산업통상자원부는 2월 10일 한국무역협회, 한국무역보험공사, 전략물자관리원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박진규 산업부 1차관 주재로 ‘제19차 산업자원안보 TF’를 개최하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가져올 영향을 점검했다.
정부는 일단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우리 실물 경제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업계의 불안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사태 장기화 등 가능성을 가정하고 철저히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산업부는 최근 국제 에너지 가격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장기계약 중심 도입, 충분한 재고·비축물량 확보로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또 우리나라의 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은 비중이 크지 않고, 공급망과 관련해서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수입 품목 대부분이 대체선 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무역업계를 포함한 산업계에 미칠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의 입장이다.
2월 10일 미국의 <CNB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서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전문가를 인용해 “러시아의 다음 행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전 세계 시장에 큰 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의 대 러시아 원유 의존도는 5.6%에 불과해 영향이 적다는 정부의 입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국제유가의 급등에 따른 국내외 경제 영향은 한국의 수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곡물을 비롯한 국제원자재 공급불안 및 가격급등도 마찬가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월 9일 농촌경제연구원 오송관측센터 대회의실에서 관계기관 및 전문가, 업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국제곡물 수급대책위원회’를 개최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내 영향 및 대응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도 정부는 “국내 사료용 밀·옥수수·대두 연간 수입량은 1722만t이며 이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이라며 전쟁이 발발해도 단기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업계에서 사료용 밀의 경우 7월말, 사료용 옥수수는 5월 중순까지 소요되는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밀, 옥수수 등의 주요 수출국인 만큼 전쟁이 발발할 경우 국제 곡물가격 역시 급등할 수밖에 없다.
공급 문제는 단기적으로 큰 영향이 없다지만 국제 곡물가격 상승은 수입에 의존하는 산업계와 소비자에 악재다.
정부 역시 “이번 정세 불안이 심화되고 장기화될 경우 국제곡물 공급망 차질과 함께 가격 상승 등 국내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전쟁으로 인해 유럽으로 가는 항공노선이나 해운항로 역시 막히거나 차질을 빚을 수 있어 국제물류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물류는 이미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병목과 물류비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큰 상황이어서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2차 영향이 불가피할 수 있다.
미국과 EU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 등 통상문제도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EU는 이미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예고했다. 특히 여러 제재 가운데 러시아 은행·기업들의 달러 거래 또는 국제결제시스템 접근 차단이 현실화될 경우 대금결제 위험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대 러시아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사태가 길어지면 대 러시아 수출·금융 제재, 산업·에너지 공급망 교란 등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러시아가 EU로 가스 공급을 줄이거나 중단하면 가스 가격이 치솟고 풍선효과로 원유·석탄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비중은 높지 않지만, 사태 악화 시 현지 진출 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불가피하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당부했다.
조선 업계는 “미국의 금융 제재가 자금 결제 중단으로 확대되면 러시아로부터 기 수주한 프로젝트 추진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업계의 피해를 줄일 방안을 찾을 것을 요청했다.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는 “갈등이 심화하면 유럽발 에너지 가격·수급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확산될 것”이라며 “원유·액화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연료비 연동으로 인한 국내 전기·가스요금 인상도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김영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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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피치 “러, 우크라이나 침공 시 경제역풍… 중국 지원도 한계”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과 대치 중인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로 심각한 경제적 역풍에 직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과 금융업에 불리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피치는 “기본 시나리오는 새로운 제재가 부정적인 신용등급 조치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이 위험이 최근 몇 주간 더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다른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현재 고려되는 대 러시아 제재 수위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적용됐던 것보다 강하다며 이로 인한 러시아의 거시경제적 영향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현재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으로 유럽연합(EU) 에너지 시장이 흔들리면 유럽보다는 러시아에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줄이면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가스에 거리를 두게 되면서 러시아 경제가 타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현재 가스 수요의 40%가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해 충족하고 있다.
러시아는 반미를 공통분모로 한 중국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제재를 타개할 돌파구를 모색하는 모양새지만, 중국이 줄 수 있는 도움에도 한계가 있다고 미국 <CNN>은 지적했다.
‘내 코가 석자’인 중국의 경제 상황과 서방 중심 금융시스템의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양국이 외교·군사적으로는 끈끈할 순 있어도 경제적인 동맹은 다소 복잡한 성격을 지닌다는 이유에서다.
먼저,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CNN은 2020년 세계무역기구(WTO)와 중국 세관자료를 분석한 결과 중국은 러시아의 최대 교역파트너로 러시아 대외무역의 1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 전체 무역액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며, 오히려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서방측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는 모양새다. 실제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최근 언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발생할 경제적인 결과와 관련해 중·러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도 이를 벌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전년도보다 크게 떨어진 4.8%로 전망하는 등 중국 경제가 불안한 상태인 것도 러시아를 충분히 돕기 힘든 이유가 될 수 있다고 CNN은 전했다.
중국이 발 벗고 나선다고 해도 서방이 국제금융결제망인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에서 러시아를 퇴출하는 고강도 제재를 실제로 부과할 경우엔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도 문제다.
CNN은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했을 당시에도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에 손을 벌렸으나 충분한 도움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015년 양국 교역은 전년도 대비 29% 감소했다. 러시아 대형은행인 VTB뱅크 관계자는 중국 은행들이 러시아 금융권과의 거래를 꺼렸다고 당시 상황을 되새겼다.